불이 꺼진 영화관에는 스크린만이 빛나고 있었다. 계단 하나에 의자 둘, 의자둘에 사람 둘, 의자 둘에 팔걸이 셋, 팔걸이 셋에 콜라 둘, 팝콘 하나.

억지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극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 의미없는 계단 숫자와 의자 숫자, 팔걸이 숫자, 그리고 내 앞에 보이는 수많은 머리통 숫자만 셈하고 있었다. 신파극은 사랑을 외쳤지만, 나는 옆자리의 손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애초에 손을 잡기 위해, 그 따스함을 교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였다. 그렇게 나는 철저한 관중으로서, 주체를 잃은 체로 나자빠져 있었다. 꺼져버린 의자에 앉아 할 수 있는건 몸을 베베 꼰 채로 셈을 하는 것. 잊기 어려운 그 기억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의미한 숫자셈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너무나 무력하게도 나와 그녀는 관중으로 떠밀린 채, 그녀 또한 나에게는 관중이 되버린 채로 시간은 흘렀고 빛이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작은 해방감을 느끼며 서둘러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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