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너의 소리를 듣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너의 포근함이 나를 일으켜 세워줬어


너의 따스함이 나를 진정시켜줬어


너를 바라보고 달려왔어


여기 있어줘서 고마워


덕분에 마침내 도착했어


그리고 너를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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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bow cocktai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레인보우 샤워

 그래. 우리가 마주한 것은 레인보우 샤워였다. 없는 레시피지만 내가 너를 위해 만든. 우주를 이루는 스펙트럼에 따라, 적외선과 자외선에서 출발한 완전히 다른 너와 내가 만들어낸 스펙트럼. 연속적인 스펙트럼에서 출발한 우리가 도달한 곳은 중간지점. 서로의 합의점이 맞는 그 스펙트럼의 중간. 그래 그것이 레인보우 샤워다. 서로 다른곳에서 출발했지만, 완전히 다른 곳에서 시작했지만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인간의 불연속적인 관점이 아닌 우리 둘만의 사랑을 통한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완성한 스펙트럼. 그것이 레인보우 샤워다. 너와 내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가는 무지개, 그것이 우리의 레인보우 샤워다. 고맙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무지개는 항상 생기는 것이 아니다. 특별하 조건이 갖춰줬을 때만, 너와 나의 관계가 생성될 때에만 완성이 되는 것, 그러한 특별한 순간에만 만들어지는 무지개, 너와 내가 만드는 조화의 무지개, 그래, 그것이 레인보우 샤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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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에서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 사실 자전적 소설들은 말이 소설이지 주변 인물들의 심리 묘사만 제외하면 자기가 쓴 자서전에 가깝다. 아마 수레바퀴 아래에서 또한 마찬가지일 것.


 이 책은 내가 고1때 읽었는데.. 그 때는 정말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한장 한장 페이지를 넘기면서 봤다. 그만큼 주인공에게 공감도 많이 되었고, 한창 성장해나가는 소년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갈등을 아주 미려하면서도 깔끔하게 잘 그려낸 작품이였기에. 네다섯번은 본 것 같다. 흠. 지금처럼 나이가 든 후에는 그냥 그런 적도 있었구나~ 하는 정도지만. 당시의 나는 엄청나게 센티멘탈한 인간 그 자체였기 때문에. 이런 센티멘탈 덩어리를 보면 가슴이 아려오고 뭔가 눈물도 뚝뚝 나올 것만 같고 그랬었다.


 뭐 내용은 어떻게 보면 별 거 없다. 다소 재능이 떨어지는 학생이(재능이 떨어진다고 하기는 어려울라나) 상급 학교에 진학을 하였고, 그곳에서 고생을 겪는 와중에 자신과는 달라 보이는 자유로운 영혼을 맞이하게 되고 이로 인해 발생한 심리적 갈등과 현실과의 괴리를 견디지 못 해 사라져버리고 만다는.


 지금도 엄청 젊지만... 그러니까 젊은 시절이라기 보다는. 지금보다 어린 시절에는 저 감정에 엄청나게 동조해서 읽는 내내 눈물이 흘렀었다.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정말 수레바퀴 아래에서의 주인공이 겪는 모든 감정적 동요들이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나 또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막 자유로운 인간과 체제 안에서의 인간 사이의 갈등 그런 것은 아니였지만. 사회 체계가 안겨주는 압박감 자체는 알게 모르게 나를 덮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뭐~ 별 생각 없다. 그냥 어릴 때 그랬나 보다~ 정도. 돌이켜보니 참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였지만 어쨌든 잘 버텨냈고 큰 탈 없이 난관을 통과했다고 생각한다.


'너무 급하게 하려고 하지 마렴. 그러다 수레바퀴에 깔리는 수가 있으니'

 교장의 명언이다. 당시에는 가슴이 쿵 하는 무거운 문장이였지만 지금은 내가 수레바퀴 좀 돌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한하게 발산하는 인간이 되어서 말이지.


 지금은 아직 하룻강아지지만 언젠가는 범이 될 것이니 헤헤


외로움


 연인과 헤어져서, 혹은 소중한 사람과 헤어져서 발생하는 외로움이 아닌 뭐랄까... 좀 더 근본적인 외로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공동의 사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마치 개미나 벌이 한 마리 개체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인간 또한 무리를 짓지 않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 인간이 지닌 태생적 외로움은 사회를 구성해야만 종족이 유지되는 탓에 생긴 본능이 아닐까. 아니 적자생존에 따르면 이런 유형의 사람들만 살아남은 것이겠지. 그러니까 현인류의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외로움을 달래야 한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만족감을 충족시켜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다. 


 그러니까 외롭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거나 고통받을 필요는 없다. 애초에 인간 개개인은 자연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개체이고 공동체를 통해서만 버텨낼 수 있으니까. 외로움, 고독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당연히 품고 가야 하는 것이다. 뭐야? 결국 해결책이 없다는 거야? 내가 내린 결론은 약간...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받아들여야 하고. 이겨내야 하고. 어느정도 선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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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서고금정도가 아니라 문명의 이기를 늦게야 누리게 된 원시부족들 조차도 금만 보면, 반짝거리는 것만 보면 눈이 뒤집힌다. 아주 고귀하고 값진 것으로 여기며 집단 내에서 최고의 지위를 가진 자가 온갖 노력을 쏟아부어 차지하려 한다.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되고 나서, 그 땅은 별로 쓸모없는 땅이였다. 하지만 남미가 잇따라 발견되고 남미에서 금이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짐에 따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미친 듯이 사람을 보내 금을 쓸어담았다. 그 결과 지금 남미는 중세 유럽의 양식이 남아 있으면서도 적도 지방 특유의 나이브함이 함께하는 문화의 용광로같은 곳이 되었으며 단순 밀림지대에서 나름 인간 세계의 한 축으로 성장하였다.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되고 나서, 황량한 서부는 아무 쓸모 없는 인디언들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금이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짐에 따라 미친 듯한 골드러쉬가 시작되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서부 개척 시대'가 시작됐다. 그 결과 모든 인디언들은 쫓겨났지만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전세계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도시가 탄생하였으며 칼텍, 스탠포드같은 최우수의 대학교, 실리콘 밸리라는 첨단 산업의 중심지를 일구어냈다. 이 모든 것이 금으로부터 출발한 것.


 호주가 발견되고 나서, 이곳은 다분히 유배지 혹은 관광지 정도로만 쓰였다. 그러나 금이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짐에 따라, 미친 듯한 골드러쉬가 시작되었고, 수많은 귀족들 또한 이곳으로 향하였으며 지금의 인구 3000만에 연 관광객 2000만에 달하며 전세계에 소고기를 팔아치우는 호주라는 나라가 만들어졌다. 이 모든 것이 금의 축복.


 왜 인간은 금만 보면, 반짝이는 것만 보면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 금이 변하지 않는 것이여서? 금은 알다시피 전자 공학이나 의학에서 쓰일 것이 아니면 별로 유용한 금속도 아니다. 오히려 그 유용하지 않음에도 쉬이 성질이 변하지 않는 점이 높은 가치를 부여받은 것일까? 아니면 유인원들(원숭이들도 반짝이는 물건을 보면 훔쳐간다)의 금을 향한 사랑은 우주 태생적 성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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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꺼진 영화관에는 스크린만이 빛나고 있었다. 계단 하나에 의자 둘, 의자둘에 사람 둘, 의자 둘에 팔걸이 셋, 팔걸이 셋에 콜라 둘, 팝콘 하나.

억지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극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 의미없는 계단 숫자와 의자 숫자, 팔걸이 숫자, 그리고 내 앞에 보이는 수많은 머리통 숫자만 셈하고 있었다. 신파극은 사랑을 외쳤지만, 나는 옆자리의 손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애초에 손을 잡기 위해, 그 따스함을 교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였다. 그렇게 나는 철저한 관중으로서, 주체를 잃은 체로 나자빠져 있었다. 꺼져버린 의자에 앉아 할 수 있는건 몸을 베베 꼰 채로 셈을 하는 것. 잊기 어려운 그 기억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의미한 숫자셈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너무나 무력하게도 나와 그녀는 관중으로 떠밀린 채, 그녀 또한 나에게는 관중이 되버린 채로 시간은 흘렀고 빛이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작은 해방감을 느끼며 서둘러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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